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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의 유래
   
  ◆ 1920년대 이전

소주(燒酎)란 말은 한자어로서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소주를 의미하는 고유어가 없다. 우리나라에 소주가 들어온 경로를 살펴보면 원나라로부터 도입되었으며 시기는 고려 후기로 추정된다.

명나라 학자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화주아라키주(火酒亞刺吉酒)를 말한 곳에서 “소주는 옛부터의 양조법이 아니며 원나라 시대부터 증류법이 처음 시작되었다. 농주(濃酒)를 지게미에 타서 잘 섞어 시루에 넣고 밑에서 불을 때고 증기가 올라가도록 한 뒤 그 기체를 써서 이슬을 받는다. 그것은 맑음이 물과 같고 맛이 굉장히 진하고 강열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주로(酒露)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소주가 아라키(亞刺吉), 화주(火酒), 주로(酒露) 등 여러 가지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음선정요(飮膳正要)」에서도 소주를 아라키주(亞刺吉酒)라고 했다. 또 명나라 황정일이 쓴 「사물감주(事物紺珠)」에는 옛날 원나라 사람이 마시던 술이라고 씌어 있다. 일본의 고서 「오함아짐(吾쪾我集)」에는 아라키주(ぁら木酒)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말에서 아랑주니 아락주니 하는 말은 고유어가 아니라 외래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주의 증류법은 동방으로 가서 아라키가 되고, 12세기 십자군의 영향으로 유럽 쪽으로 가서는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가 되었다.

그런데 소주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상당히 고급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조선 성종 때 사간(司諫)인 조효동(趙孝同)은 일반 민가에서 소주를 만들어 음용하는 것은 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므로 소주제조를 금지하는 영을 내리라고 왕에게 아뢴 사실이 있다. 이처럼 소주는 당시 사치스러운 술이었으며 약으로 쓰여 약소주라고도 불리었다. 소주의 유행은 더욱 심하여 세종 때에는 곡의 낭비가 많으니 함부로 소주를 제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진언이 있을 정도였다.


◆ 1920년대 이후

1920년 이전에는 순수한 재래식 방법으로 소주를 내렸지만 그후에는 신기술의 도입으로 많은 변화를 주면서 소주를 내리게 되었다.

소주는 날씨가 춥고 잡곡이 많이 생산되는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지방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여름에는 더위로 약주를 빚을 수 없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빚어졌는데 몽고의 기지가 있던 개성, 안동, 제주에서 특히 성행했다.

소주 제조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증류기 및 제조법이 다소 변하기는 했으나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일반가정에서는 솥에 숙성된 술을 넣고 시루를 얹은 후 그 안에 주발을 넣고 시루 위에 솥뚜껑을 거꾸로 덮는다. 솥에 불을 때면서 솥뚜껑의 물을 갈아주면 소주가 주발에 고이게 되는 조금 원시적인 방법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흙으로 빚어 만든 소주 내리는 기구를 ‘는지’라고 했다.

이보다 조금 발전된 것이 ‘고리’이다. 이 증류장치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밑부분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으며 위의 것은 그와 반대로 밑이 좁고 위가 넓다. 위쪽에 숨이 나오는 주둥이가 있어 주발을 밖에 놓고 소주를 받았다. 이 고리는 흙으로 만든 것을 토고리, 동으로 만든 것을 동고리, 쇠로 만든 것을 쇠고리라고 했다. 충남, 전라도, 황해도, 경상도는 토고리, 개성은 철고리, 함경도는 는지나 토고리를 쓰다가 나중에 동고리를 주로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각 지방별 소주제조법은 다음과 같다.

* 서울지방
3월경에 2섬 8말의 항아리에 쌀 9말로 밥을 지어 물 8말과 곡자 50개를 넣어 3주쯤 되어 술이 익으면 뚜껑을 덮고 흙으로 밀봉해서 보존했다가 5월경부터 수요에 따라 증류했으며 대략 37도 소주 7말 2되가 나왔다.

* 평양지방
   소주 원료는 대개 곡자와 수수였는데 원료 비율은 곡자 60개, 수수 3말, 물 7말을 밑술로 한다. 덧술로서 쌀 2말, 찹쌀 5되를 3배의 물로 죽을 쑤어 넣고 겨울에는 40여일 가량 발효시켜서 소주를 내린다. 이때 보통 35-40도 소주 2말 3되를 얻는다.

* 황해도지방
    1회 증류량은 4말로 하고 숙성술덧 주도에 관계없이 8말 4홉만 닦아 내리는 특징이 있다.

* 함흥지방
    곡자 사용량이 적고 물을 많이 넣어 단시일 내에 숙성시켜 증류했다.

* 호남지방
    한 솥에 2말을 넣고 불을 서서히 때며 보통 4회 물갈이를 하는 관습으로 소주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