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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스키의 유래
   
  ◆ 위스키의 역사

오늘날 위스키의 원형은 12세기경에 만들어졌다. 켈트(Celt)인들의 우스퀴보(Usquebaugh, 생명의 물)는 아일랜드에 전해졌으며, 1170년 헨리 2세의 잉글랜드 정복에 의해 스코틀랜드에도 전해져 15세기에는 고지대인 하이랜드(Highland)에서 위스키가 제조되었다. 이리하여 위스키는 아일랜드의 아이리시(Irish) 위스키와 스코틀랜드의 스카치(Scotch) 위스키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1660년에 1갤런당 2펜스의 세금이 매겨진 이래 스카치 위스키는 밀조자와 징세관의 경합 중에 발전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합병으로 대영제국이 탄생한 후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종전보다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증류업자들이 하이랜드의 산속에 숨어 위스키를 밀제조했다.

밀조자들은 맥아의 건조를 위해 이탄(泥炭, peat)을 사용했는데 이 건조방법이 훈연취(熏煙臭)가 있는 맥아를 사용하여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게 된 시발이 되었다. 또한 증류한 술을 은폐하려고 셰리주(sherry)의 빈통에 담아 산속에 은폐시켰는데 나중에 통을 열어 보았더니 증류 당시에는 무색이었던 술이 투명한 호박색에 짙은 향취가 풍기는 술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목통 저장의 동기가 되었다. 밀조자들이 궁여지책으로 강구한 수단들이 위스키의 주질 향상을 가져왔던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포도가 휘로키세라 충에 의해 전멸되었기 때문에 당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코냑(Cognac)의 제조가 불가능하게 되자 이 틈을 타 듀워(Dewar), 워커(Walker) 등이 노력한 결과 스카치 위스키는 세계적인 술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1880년 카피(A. Coffey)에 의해 연속식증류기가 발명되어 그레인위스키(grain whisky)가 제조되었는데 오랜 논쟁 끝에 그레인 위스키도 위스키로 인정되어 종래의 몰트 위스키(malt whisky)와 조합하여(blending) 제조하게 되었다.

이 사이에 6개의 큰 회사가 DCL(영국증류자협회)을 설립, 제조업자를 합병하여 큰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의 출연은 스카치의 보급에 한층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순수한 몰트 위스키(pure malt whisky)의 애호가도 있어 양적으로는 많지 않지만 현재도 시판되고 있다.

아일랜드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만큼 신장은 되지 않고 있으나 아이리시 위스키로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켄터키를 중심으로 아메리칸 위스키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버번(bourbon)은 세계적인 술로 성장했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캐나디안(Canadian) 위스키로 독특한 발전을 이루었다.


◆ 우리나라 위스키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위스키 제조는 1960년에 풍한발효(주)(현 서영주정)에서 위스키 제조를 위한 연구를 시도했으나 상품화되지는 못했고, 1970년대 월남전과 더불어 청양산업(주)이 군납을 목적으로 기타재제주 위스키를 제조했다. 그후 1974년에는 백화양조(주)와 (주)진로가 수출조건부로 외국 위스키 원주를 수입, 이를 기주(基酒, base)로 사용하여 인삼주, 즉 인삼위스키를 제조했다.

정부는 1976년 국민소득 증대로 고급주류 개발정책을 수립하고 백화양조(주), (주)진로, 오비씨그램(주), 롯데칠성음료(주), 해태산업(주)에 위스키 국산화에 필요한 시설을 갖출 것을 조건부로 하여 위스키 제조면허를 발급했다. 그러나 면허발급 회사 중에서 백화양조(주), (주)진로, 해태산업(주)만 원액을 수입하여 국산 주정과 혼합한 기타재제주 국산 위스키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후반 양주류 특히 위스키에 대한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국산주류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수입 위스키 원주와 국산 주정으로 제조하던 기타재제주 위스키의 생산을 중단시키고, 위스키 제조면허를 받은 오비씨그램(주), 진로위스키(주), (주)베리나인에 몰트 위스키 원주함량 30%의 국산 위스키를 개발 시판하게 했다.

또한 1983년에는 위스키 산업의 육성, 주질의 고급화, 외화절약 등을 위해 ‘국산위스키 개발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위스키 개발을 위한 첫번째 단계로 몰트 위스키 원주 제조시설을 1983년까지 완비하여 국산 몰트 위스키 제조가 시작되었고, 두번째 단계로 주질의 고급화를 목표로 1984년부터 국산 대맥을 원료로 한 그레인 위스키 제조가 개시되면서 위스키 원주 국산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 등 술덧 국제행사에 대비하여 수입 몰트 위스키 원주 40%와 그레인 위스키 60%로 블렌딩한 스카치 타입의 특급 위스키를 제조하도록 하여 주질의 고급화를 꾀했다.

1987년부터는 국내 위스키 3사가 국산 위스키 원주와 수입 위스키를 혼용하여 ‘국산 특급위스키’를 개발 시판했다. 그러나 수년 내지 10여년의 숙성에 따른 재고 증가로 인한 자금 부담, 수입원주와의 가격 경쟁력 문제 등으로 국산화가 어려워 국산 위스키는 1991년부터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후 국내 위스키 제조는 전량 수입원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