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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음주문화] 독일 / 조관연
 
   
 
관리자 | 2006.10.09
현재 독일인들은 엄격하고, 정확하고, 정직하고, 고지식하고, 검소한 일벌레로 비쳐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매사에 공과 사를 잘 구분하며, 질서와 약속을 잘 지키며, 자기 통제를 잘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있다. 민족의 특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단정 짓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지만, 현재의 독일인 특성은 다른 민족들과 비교할 때 위에서 거론한 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독일인은 술을 마실 때 술잔을 돌리는 법도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고 권하는 것도 -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 없다. 또한 술 한 잔을 안주도 없이 30여분 넘게 홀짝홀짝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이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주목적인지 아니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주목적이고 간간이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인지 아리송해질 때가 많다. 서구의 다른 국민들과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동소이한 독일인들의 음주문화는 우리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지고, 이들이 언제부터 이런 음주문화를 갖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한다.

중세와 근대 사람들은 술을 통해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집단속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취함으로써 안정, 기쁨, 망각 그리고 위안을 얻으려 하였다.  이 당시 독일인들은 풍요와 기복을 중시하는 게르만 시대 이래의 종교가 이단 또는 미신으로 단죄되고, 원죄와 예수를 통한 구원을 주장하는 기독교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세계관의 혼돈을 겪게 된다. 또한 종교 개혁 이후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독일은 끊임없는 전쟁터로 변했으며, 연방국가 상호간의 무력적 갈등 그리고 시장경제체제로 들어선 당시 사회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와 농촌과 도시공동체의 약화는 사회내의 혼란을 야기했다.  이외에 인구 증가와 기술력의 한계, 전쟁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인해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영양상태가 나빠졌으며, 이는 사람들이 페스트를 비롯한 당시 전염병에 더 쉽게 감염되게 하였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 하에서 이승에서의 천국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술은 좋은 위안처를 제공해 주었다.

중.근대 시대에 술이 갖고 있던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매우 컸다.  사회적인 혼란은 심해지고, 통제력은 약화되고, 술의 소비가 전에 비해 자유로워지고 많아지면서 술에 취해 자기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일이 더 자주 발생했다.  이로 인해 싸움박질, 우발적인 살인, 술 취한 상태에서 난방이나 조리를 하다 발생하는 도시 화재, 그리고 빈도는 떨어지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매우 컸던 봉기도 일어났다.  당시 독일인들의 과도한 음주에 대해 위정자와 성직자는 모두 큰 우려를 표했다.  종교개혁의 시발점을 제공한 마틴 루터는 “음주는... 우리나라에 일종의 페스트인데, 이는 신이 노해서 우리에게 보낸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통해 판단하건데 독일인의 음주문화는 생활환경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압력, 경고조치, 처벌 그리고 개신교적인 근검정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개선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지식인과 위정자들은 거의 모두 루터와 같은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의 노력은 음주문화를 별달리 변화시키지 못했다.

1876년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lich Engels)는 “감자에서 증류주가 생산됨으로써 모든 산업이 혁명을 맞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양조장이 도시에서 값싼 재료와 노동력이 있는 농촌으로 이주하고, 질 나쁜 증류주를 싼 값에 대량으로 만드는 대규모 양조장에 의해 소규모 양조장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감자로 만든 증류주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값은 폭락을 거듭했다.  이런 가격 경쟁력 덕분에 감자 증류주는 대량 생산되고 유통되었는데, 1827년 프로이센에서는 1억 4,400만 리터가 생산되었다.  이는 국민 한 사람당 12리터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값싼 감자 증류주는 당시 독일을 휩쓸었는데, 이 결과는 대단했다. 무산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예전에 비해 1/3 또는 1/4밖에 하지 않는 이 술을 사서 마실 수가 있게 되었고, 빨리 취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이 술이 일으키는 사회적 파장은 이후 증류주 - 페스트라고 일컬어질 만큼 큰 것이었다.

사회적 파장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값싼 증류주를 가지고 몇몇 독일 양조업자들은 가짜 술들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유통시켰다.  이 술에서 가짜 럼이 만들어지고, 후에는 기술이 상당히 필요한 코냑, 그리고 포도즙과 화학약품을 첨가한 포도주가 만들어져서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되었다.  이 술은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범람했다.

당시 감자 증류주와 가짜 술의 주된 소비층은 포도주나 맥주를 사 마실 수 없는 빈민층이었는데, 당시 사람인 엥겔스는 이술이 사회에 끼친 파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예전의 (잔치에서 볼 수 있던) 기분 좋은 안락함 그리고 드물게 나타나는 무절제함이.... (이제는) 칼부림이 빠지지 않고, 살인사건이 점점 더 자주 빈발하는 폭력적이고 황량한 잔치로 변하였다.  이는 프로이센의 증류주가 갑작스럽게 범람했기 때문인데, 이 술의 특성을 살펴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독일인의 음주문화에 염증을 느낀 시민계층 사람들의 상당수는 증류주 - 페스트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 구성원의 도덕적 재무장 운동에 나섰다.  내무성과 경찰의 간접적 지원 하에 금주를 위한 단체들이 결성 되었는데, 이 단체의 회원들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또는 조금만 마시는 사람들이었다.  이 단체들의 모델이 된 것은 - 이미 증류주의 해독으로 인해 한 차례 홍역을 치른 - 미국과 영국의 금주협회였으며, 이 금주협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간접적으로 독일인의 건전한 음주문화 정립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세기 초반 이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금주단체들은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는데, 1845년 독일 지역에 - 교회나 사설단체에서 운영하는 금주단체를 제외하고도 - 875개의 금주단체가 생겨났으며, 회원은 6만 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19세기 중반에는 소극적인 계몽에서 벗어나 술을 모아서 태우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이들의 노력이 독일인의 건전한 음주문화에 기여했는지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만은 확실하다.

독일인의 음주문화가 바뀌게 된 또 다른 요인으로는 학교 교육의 확대와 산업화를 꼽을 수가 있다.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독일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후진성을 못 면했지만, 교육에 있어서는 선진국이었다.  일찍이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개신교 교리에 기인하는데, 교육의 내용도 앞서 언급한 종교적인 색채와 인문주의적 전통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화는 도시의 임금노동자 계층을 대량으로 탄생시켰다.  농업에 종사하였던 이들에게 공장 노동은 비할 수 없이 빠르고 단순한 리듬을 띠고 있었으며, 강도도 매우 높았다.

19세기 중반까지 공장주들은 농업시대의 전통에 따라서 이들에게 힘든 노동을 잊게 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간에 술을 제공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생산성 저하, 많은 산재 발생, 무단결근, 명령 계통의 무시와 같은 폐단이 발생했다.  1870년대 이후 독일의 거의 전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에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고, 이 대신에 값이 하락한 커피나 싼 치커리 차와 같은 커피 대용 차만 제공되었다.  또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고달픈 일상사와 무기력함을 잊어버리기 위해 일과 후 많은 술을 마시고 이로 인해 다음날 결근하면 공장 가동이 어려워지는 등 많은 경제적 손실이 생기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준다든지 아니면 해고를 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일자리가 항상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음주문화를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서 바꾸어 나가야만 했다.

음주문화가 오랜 기간 형성되어 왔고, 중요한 삶의 일부분으로 여겨지는 독일 사회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질곡이 예전에 비해 더 옥죄어 오는 현실에서 술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맥주는 다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낮으며 흐르는 빵이라고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영양분이 있고, 대량 생산으로 인해 값이 싸지고, 무엇보다 독일인들의 문화를 잘 대변해 주는 맥주는 노동자의 술 또는 국민의 술로 승격을 하게 되고, 값싸게 취할 수는 있지만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증류주를 빠른 속도로 대체하게 된다. 

맥주로 대체된 후 사회적 문제는 줄어들었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건전한 음주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은 나치 시대까지 계속되는데, 이 당시 “약한 자는 필요 없다”라는 나치의 구호처럼 나약한 인간들은 강한 정신적.육체적 훈육을 통해 사회에서 강한 자로 만들어 졌다.  강한 자는 튼튼한 몸을 가진 조직속의 인간, 자기 통제를 잘하는 인간을 말한다.

현재 독일인들은 술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 마신다.  술자리에는 항상 다양한 이야기가 주제들로 등장하고, 술자리의 분위기는 일상적인 삶과는 달리 열려 있다.  독일에는 한국과는 달리 연고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술이 연대망을 맺어주는 기능은 약한 편이다. 또한 일상의 질곡에서 벗어나 멋진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경우도 알코올중독자나 일부 젊은이를 제외하고는 드물다.  술자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이며, 남에게도 술을 강권하지 않는 것이다.

자가운전자와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만남과 사고의 장인 술자리에서 술을 못 마시게 되는 사람이 많아졌다. 독일의 음주단속 기준은 북구의 국가들보다는 엄격하지 않지만 한국보다는 엄격하다. 자전거 운전자도 자동차 운전자와 마찬가지로 음주단속 대상이며, 자발적으로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음주단속은 한국처럼 자주 있지 않으며, 적발되는 사람의 수도 많지 않다.  적발되면 매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차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술처럼 분명하게 야누스의 두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드문데, 운전 때문에 술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면을 포기하기가, 통제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독일인에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에서 알코올이 없거나 도수가 낮은 맥주가 시판되고 있는데, 이 맥주는 사람들이 알코올 섭취 없이 사교적인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게 하였다.  알코올 섭취가 금지된 이슬람 국가에 대량으로 이 맥주는 수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운동경기장에서 시판되고 있다.

[출처 : 알코올백과 -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