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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음주문화] 미국 / 조성기
 
   
 
관리자 | 2006.10.11
◆ 미국의 술집

금요일 저녁 9시, 미국 워싱턴 주 올림피아 시의 한 바에 들어가 보자.
문 앞에는 건장한 사나이가 서 있는데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 때문이다. 들어가 술을 마시려면 바텐더 앞에 줄을 서야 한다.  한 잔씩 현금을 주고, 각자 마시고 싶은 술을 받아서 빈자리로 찾아간다.  빈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서서 마셔야 하므로 빈 공간을 찾아야 한다.  한 모금 마시고 좌우를 보면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에서 흥겹게 제멋대로 춤을 추는 취객들이 보인다. 

잠시 후 문 쪽에서 또 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손님 중에 젊은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그리고는 신분증을 요구한다.  다시 홀로 나온 그는 만취한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좌우를 둘러본다.  주 알코올 통제국(State Liquor Control Board)에서 나온 검사관이다.  미성년자를 출입시켰는지를 감독하고, 만취한 사람이 술집에 있는가를 검사하는 것이다.  만약에 그러한 사실이 발각되면 상당히 큰 벌금을 내야하고, 반복되면 일정 기간 문을 닫아야 한다.  어떤 한국인은 그런 경우 뒷주머니에 사례금을 넣어 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를 미국에서 찾아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미성년자는 바의 주인이 미리 자발적으로 출입을 통제하게 되고 취객은 만취 전에 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일정하게 취한 손님이 술을 추가로 주문하면 주인은 모른 척하고 일반 음료수나 커피를 제공한다.  그리고는 귀가를 종용한다.  취객이 그 말을 들을 리가 만무하겠지만 미국의 취객은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만약에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술을 요구한 손님이 주인으로부터 “You are eighty-six!"(개척시대에 가장 알코올 농도가 낮은 술이 86도짜리였다.  그때는 86도짜리 술은 술이 약한 사람이나 취하여 쫓겨나기 직전의 사람에게 제공되는 술이었다.  요즈음은 ”너하고는 그만이야“라는 의미로 쓰이는 은어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 바의 출입을 일정 기간 동안 제한받게 된다.  이른바 ‘술집 정학’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한 권리가 술집 주인에게 있는 곳이 미국이다.

이러한 미국의 바를 정의해 보면, “자기가 마시고 싶은 술의 술값을 자신이 잔마다 치르고, 받아서 즐겁게 마시고 신나게 떠들고 춤을 추며 놀지만, 멋대로 취할 수는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규칙 속에서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술집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 미국인의 음주

그러면 미국인은 얼마나 마시는가? 미국인은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술을 마신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12세 이상 인구 중 54%가 지난달에 술을 마셨다고 응답했다.  종교적이나 도덕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보면 상당한 수의 음주 인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인의 술 소비량은 선진국 중 중간 정도이며,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은 최근 몇 년 간 미미하지만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편, 알코올 산업이 전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직간접적으로 약 700만 명가량의 인력이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고 있으며, 주세는 175억 달러, 캔과 병의 제작, 운송, 포장 등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3조 달러가 넘는 규모다.  그런데 미국인이 술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눈은 통상 곱지가 않다.  상당수의 교육용 팸플릿은 주로 알코올 남용이 교통사고, 질병, 무질서, 파괴적 행동, 폭력 등을 낳는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국가인 만큼 전부가 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음주는 스트레스의 완화, 사회관계의 증진, 심장지환의 감소, 수명 연장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알코올에 대한 신념과 태도는 사실 이중적인 면이 있다.

◆ 미국사속의 음주와 금주 문제

미국인의 알코올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시대가 변하면서 바뀌어 왔다.  영국의 식민시기에는 모두 무진장 마셨다.  어린아이들까지 부모들과 함께 마셨다는 자료가 있다.  그 당시엔 ‘정기적으로 마셔야 건강에 좋다’는 무조건적인 신념이 있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과 같이 술집이 사회의 중심지였다.  한때는 교회, 시청, 법원에서도 술을 팔았다고 하니 앞에서 본 술집 장면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그 당시에는 술이 그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었지만 만취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적 통제가 있었다고 한다.  술을 신의 선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금주자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독립운동기에 주세가 연방세로 부과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까지도 미국의 술집은 공격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산업발전, 도시화 등의 사회변화가 발생하고 사회갈등이 심화되면서 알코올 남용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 갔다.  만취가 점차 덜 허용적이 되어 갔던 것이다.

알코올에 대한 허용적 입장과 불허적 입장은 미국 이민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증폭되었다.  초기 이민인 북부 유럽의 신교도 출신과 후기 이민인 남부 유럽의 가톨릭 간의 갈등이 그것이었다.  기층민들 간에 금주운동이 확대되었고, 이것이 새로운 이주자들에 대한 통제로 작용하게 된 것이었다.  금주를 찬성하는 집단들은 금주에 대한 책, 팸플릿, 포스터, 교육 자료들을 무진장 공급했고, 이것이 나중에 유명한 미국의 ‘금주법’을 통과시키는 기초가 되었다.  요즈음도 마찬가지지만 금주자들의 자료에는 음주와 알코올 남용 간을 구분하지 않으며, 금주자는 덕을 가지고 축복을 받는 자, 음주자는 죄를 지어 비참하게 되는 자로 설명되었다.

1920년에 금주법이 통과되었다.  “알코올 산업을 전시에 필요한 식료품 제조 산업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사실은 금주단체들의 다양한 노력이 주요한 결과였다.  더욱이 새로운 이민자들을 정치적인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이를 통제하고자 했던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좋은 구실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금주법은 금주운동이나 알코올에 대한 무작정적인 통제가 현실적이 아님을 입증한 좋은 사례가 되었다.  금주법이 폐지되던 날,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였지만 뉴욕의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금주주의자들의 낙관적인 이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음주를 막지 못했고, 밀주가 양산되었으며, 조직범죄, 폭력, 정치적 타락이 극도에 달했던 것이다. 1933년을 끝으로 인류사에 ‘금주’에 대한 실험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한다.

◆ 알코올 문제에 대한 ‘개념’의 발전

금주법이 철폐된 이후 알코올에 대한 통제는 연방정부에서 개별 주 차원의 일로 되었다.  금주는 극히 일부 지역사회, 인디언 보호지역, 21세 미만의 청소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되었다. 

당시 정부의 주요한 알코올 통제정책은 국민의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을 줄이는 것으로 세워졌다.  1975년에 설립된 ‘국립 알코올중독 및 남용 연구원’(NIAAA)의 회장은 알코올을 ‘가장 더러운 약물’이라고 규정하고 주요 논의를 규제의 대상과 크기에 대해 하였다. 

그러던 중에 알코올중독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출현하여 미국에서의 알코올 문제는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알코올중독이 ‘질병’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개념은 사실 1795년에 러시(Rush, B)가 정의를 내린 것으로, 알코올중독을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는 AA가 1935년에 세상에 출현하자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제 알코올중독자는 의지박약자, 도덕상실자, 나쁜 습관을 가진 자가 아니라 질병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이 개념은 앨리니크(Jellinek, E. M.)가 추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연구기관에서도 질병 개념을 가지고 하는 연구가 촉발되었다.  미국에서 이제 알코올중독자 문제는 중독자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질병에서 사람을 구제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알코올중독의 질병관은 미국답게 관련 산업의 발전을 가져왔다.  알코올중독 치료사업의 연간 수입이 1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수십만 명이 이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 최근의 알코올 소비 추세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베블런(Vebren.T.)은 유한계급의 과시욕의 한 방편이 ‘술 마시는 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생산성과 소득이 증가한 사회에서는 이제 술 마시는 일은 일반인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인구의 노령화, 건강과 생활양식에 대한 관심 증대, 알코올 남용 문제에 대한 태도 개선의 노력 등이 미국의 알코올 소비량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게 마셔대던 알코올의 소비 추세가 1967년 이래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성 음주와 청소년 음주의 증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다.

미국인은 술 마시는 곳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정해진 곳에서 마셔야하고, 대부분 야외에서는 못 마신다.  야외에서 마시면 100달러가 넘는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니 통계를 보면 집에서 마시는 경우가 가장 많다.  자신의 집에서 마시더라도 미성년자는 경찰의 검문에 걸릴 경우 징벌의 대상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인의 1인당 총 음주량은 순알코올 기준으로 연간 9.3리터를 기록하고 있어 적지 않은 수준이다.  좋아하는 술은 맥주와 증류주와 와인 순인데, 그 비율은 53%, 31%, 16%다.  매출액의 감소세는 각각 4%, 6%, 24%로 고도주의 소비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미국처럼 음주문화를 규정하기 어려운 나라도 없다.  미국은 다민족국가로 이민족 간에 각기 자신들의 음주문화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내의 한국인도 고국에서의 음주습관을 못 버린 경우가 상당히 많다.  2,3차 가기, 폭탄주 마시기, 술 강요하기 등이 한국인 거주 지역에 존재한다.  물론 환경변화에 적응한 사람들도 많지만 고국의 불건전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고 있는 것이다.

◆ 예방과 치료

미국인 음주의 특징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적정음주의 습관이다.  즉, 대부분의 미국인은 건전하게 마신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술로 인한 문제가 없는 곳은 없으며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소득의 2.5% 정도를 건강, 사고, 질병상의 문제로 인한 피해액으로 계산하고 있으며, 중독자 수를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런데 술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만큼 열심인 나라도 드물다. 

미국은 예방과 치료의 천국이다.  알코올 문제 예방과 치료에 관한 세계의 모든 자료는 거의 미국에서 산출되고 있다면 과언일까?  모든 주마다 수백 개의 치료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도 놀랄만한 일이고 금주주의자들과 음주주의자들의 대결도 볼 만한 곳이다.  그로 인해 건전한 음주 관리법이 구체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개발된 Harm Reduction 개념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는 곳도 미국이다.  최근에는 국립연구기관에서도 무조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적정 음주관을 토대로 예방대책을 찾는 연구도 진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알코올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교육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알코올 교육 프로그램은 초등학교를 비롯 중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교육 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예방하는 것이 열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을 국립 연구기관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들이는 비용에 비해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비판이 내부에 없지 않지만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들의 투자와 노력은 모든 국가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출처 : 알코올백과 -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